━
[세계 1등 식당의 비결] 프랑스 망통 ‘미라주르(Mirazur)’









필자가 미라주르를 방문한 날의 메뉴 컨셉트는 ‘잎’이었다. 테이블이 온통 초록빛이다. [사진 박희은]







니스와 칸, 프랑스 의 반짝이는 이름난 휴양지들 사이에 망통은 어쩐지 소박하다. 한껏 밀려드는 인파로 들썩이다가도 레몬 축제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파도 소리만 남는 바닷가 마을. 이 심심한 해안 마을이 세계 미식의 순례지가 된 이유는 ‘미라주르(Mirazur)’ 때문이다. 2019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 미쉐린 3스타, 그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다. 하지만 이 집의 진짜 이야기는 ‘세계 최고의 맛’이 아니라, ‘어떻게 한 셰프가 도시 전체를 재생시켰는가’에 있다.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의 이탈리아계 셰프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미식계의 전설적인 셰프인 알랭 파사르와 알랭 뒤카스의 주방을 거친 전도유망한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 때 파 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를 선택하지 않았다. 꿈은 컸지만 예산은 현실이었고, 무엇보다 자유가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망통의 한 식당을 매각하려는 주인을 만나면서 운명이 열렸다. 망통은 국경 지대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풍부한 식재료를 아울러 쓸 수 있고, 저평가된 풍광이 오히려 그에게 기회로 여겨졌다. 그렇게 1930년대 지어진 빌라를 개조해 2006년 문을 연 미라주르는 이제 세계 미식가들이 ‘순례하듯’ 찾아오는 성지가 됐다.









‘미라주르’의 마우로 셰프가 레스토랑에서 직접 운영하는 농장을 둘러보 고 있다. [사진 미라주르]







식사는 정원에서 시작된다. 미라주르를 찾아 먼 길을 온 손님들은 테이블로 바로 안내 받지 않는다. 농부이자 팀원의 안내를 따라 5분 남짓 언덕길을 오르면 햇살 아래 작은 농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텃밭에서 시작해 매년 가지 치듯 옆으로 확장된 농장은 현재 약 1만5000평(약 4만9587㎡)에서 70여 종의 토마토, 15종의 감귤 등 약 1500종의 작물이 자라는 생태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다.

농부가 막 딴 잎을 손님의 손에 올려준다. 같은 녹색 잎이지만 각기 다른 향이 터진다. 레몬의 상큼함, 후추의 매운 향, 꿀의 달콤함. 셰프가 강조한 “자연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이자 오늘 코스의 시작이다. 새하얀 문이 열리고 좁고 긴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 양옆 유리창 너머는 활짝 열린 주방이다. 수십 명의 셰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환하게 웃어준다. 계단을 오르면 ‘압도적인’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시야 가득 담긴다. 이제 곧 방금 정원에서 맛본 잎사귀와 뿌리들이 셰프들의 손끝을 떠나 이 복도를 거쳐 손님들의 테이블에 도착할 것이다.
미라주르의 컨셉트는 작물이 자라는 순환 과정을 요리에 담는 것. 메뉴는 자연의 리듬에 따라 Root(뿌리) → Leaf(잎) → Flower(꽃) → Fruit(열매), 네 가지 테마가 차례로 순환한다. 손님들은 매일, 그날의 주제에 맞는 9코스로 구성된 메뉴를 맛볼 수 있는데 같은 테마라도 절기마다 재료가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꽃’의 날에는 수백 송이의 타임 꽃이, ‘열매’의 날에는 흰 토마토와 여름 복숭아가, ‘뿌리’의 날에는 막 뽑은 마늘과 감자가 등장한다. 마우로 셰프는 “우린 매일 365개의 계절 속에 산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음식만 바뀌는 게 아니라 조명과 인테리어, 심지어 직원들의 유니폼까지 이 리듬에 맞춰 변한다. 그래서 같은 공간을 여러 번 찾아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의 테마는 ‘잎’이었다. 물론 비둘기·대구·가리비 같은 식재료가 코스 곳곳에 배치돼 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잎사귀들’이었다. 짙은 올리브색, 연둣빛, 투명한 청록색까지, 테이블 위는 온통 초록이었다. 어떤 잎은 해초처럼 짭조름했고, 어떤 잎은 민트처럼 쌉쌀했으며, 또 어떤 잎은 씹을수록 꿀처럼 단맛이 돌았다. 그 미세한 차이를 혀 끝으로 구분하며 즐기는 일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잎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서로의 향을 살리며 밸런스를 맞춘다. 이날 만큼은 고기와 생선이 조연이었고, 잎사귀들이 주연이었다.









프랑스 소도시 망통에 위치한 레스토랑 미라주르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광. [사진 미라주르]







미라주르의 혁신은 주방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당이 성장하자 지역 농부·어부와 장인들이 공급망에 합류했다. 지금은 식재료의 70% 이상을 망통 인근에서 조달한다. 정원사·요리사·인류학자·연구원까지 60여 명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데 마우로 셰프가 만든 직·간접 일자리는 망통 인구 대비 결코 적지 않다.

그가 이끄는 변화는 미라주르 너머로 이어진다. ‘Mitron Bakery(빵집)’ ‘Casa Fuego(아르헨티나식 그릴 레스토랑)’ ‘Pecora Negra(피자집)’ ‘Ceto(해산물 레스토랑)’까지 미라주르 팀은 망통 일대에 네 곳의 식음 공간을 열어 추가로 수십 명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했다. 농부와 생산자들은 미라주르와 긴밀히 연결돼 안정적인 판로를 얻고, 제빵사·농부·예술가·디자이너가 네트워크 안에서 협업하며 도시는 점점 ‘살아 있는 실험실’로 변했다. 마우로 셰프는 이 생태계를 ‘미라주르 유니버스’라 부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도시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내는 셰프, 마우로 콜라그레코가 있다.














박희은 자유기고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벤처투자자. 전 세계 도시를 오가며 로컬 미식, 공간, 사람을 통해 문화의 결을 읽는 것을 즐긴다. 셰프를 하나의 창업자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미식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소개할 예정이다. 기자 admin@gamemong.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