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 김경래 장신대 교수, 김지혜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교회와디지털미디어센터의 조성실 센터장, 아르케 애니메이션의 대표인 강창훈 목사.


2023년 국제 사진 대회인 소니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AI로 생성된 사진이 1위를 차지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해당 작품을 만든 보리스 엘다크젠은 “AI 이미지가 사진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폭넓게 토론하고 싶어 작품을 냈다”며 의도적으로 출품한 사실을 밝히며 수상을 거부했다. 반대로 지난해 열린 국제 사진 공모전 AI 부문에서는 사람이 직접 촬영한 작품이 3위를 차지하는 아이러니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제 AI가 만든 예술 작품은 인간의 작품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같은 결과만 놓고 보면, AI가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화 창조에서 있어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전 문가들의 진단이다. 진리와 허구를 구별하고, 관계성과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 중심’의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기독교 문화 영역에서는 AI 활용에 있어 윤리의 기준을 더욱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화선교연구원(문선연·원장 백광훈)과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시네필름에서 개최한 시네포럼 ‘AI-환경 속 기독교 문화 창조와 책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AI를 창조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AI를 통해 관계성과 의미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실제 현장에서 AI를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한 사례도 소개됐다.



김경래 장 신대 교수


김경래 장신대 교수는 AI를 활용해 문화를 창작할 때 ‘창작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학적 관점에서 창조와 윤리적 책임을 역설했다. 특히 일본과 미국 등에서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그림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AI를 창작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규정했다.
강 교수는 “창세기 1장 27절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며, 자유의지·지성·관계성·창조성을 지닌 인격적 주체”라면서 “내면의 감정과 세계관, 영성 등이 담긴 창작만이 진정한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하나님의 창조를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은 문화 창조의 대리자이자, 관리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문화 창작의 책임과 윤리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AI는 계산기처럼 복잡한 작업을 돕는 수단일 뿐이며, 창작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며 “가짜뉴스, 모욕적 콘텐츠, 저작권 침해 등 AI를 통한 창작물의 유포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하며, 특히 기독교 문화 영역에서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진리와 허구를 분별하고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혜 문선연 책임연구원


김지혜 문선연 책임연구원은 AI가 창작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문화 창조의 본질을 다시 묻고 기독교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성찰했다. 그는 창조성이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구성됐다는 점을 짚으면서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가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결과 중심에서는 AI가 만든 작품이 인간의 것과 구별되지 않을 때 미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과정 중심에서는 창작의 동기와 감정, 내면의 표현이 결여된 AI의 산출물은 진정한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며 “표현주의적 예술, 예를 들어 뭉크의 ‘절규’처럼 감정이 담긴 창작은 내면의 자아나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는 AI가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모방과 재현을 할 순 있지만, 의미를 구성하고 세계에 응답하는 능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AI 시대의 기독교 문화 창조를 위한 세 가지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해석하는 인간으로서 의미를 탐구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진리 중심의 창작을 지향해야 하는 것, 마지막으로 기존 콘텐츠를 재조합하고 재해석하는 ‘기독교적 리믹솔로지’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창작에 참여할 수 있으며, 재조합과 재해석 의도를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처럼 허구를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드러내는 창작이 중요하며, 수용자가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김 연구원은 “AI가 무한히 콘텐츠를 생성하는 시대일수록,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며 “성육신적 진리를 살아내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화 창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용자 역시 지혜와 분별력을 갖고 문화를 해석하는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교회와디지털미디어센터의 조성실 센터장


교회와디지털미디어센터의 조성실 센터장은 다양한 집단이 AI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며 문화 영역에서의 AI 활용은 인간과 공동체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미 생산의 구조를 설명하며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부호화한 콘텐츠가 관객에게 전달되고, 관객은 이를 디코딩하며 각자의 의미를 생성한다”며 AI가 만든 콘텐츠 역시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 센터장은 “AI는 재현에 능하지만, 그 재현이 감정과 추억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해석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조 센터장은 “AI는 인간의 창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저작자의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며 “대역 배우, 인공지능 합성 콘텐츠, 복제물 등은 사전 동의와 공정한 보상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 등은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보호와 보상 문제를 두고 파업을 벌였고, 이는 AI 시대의 창작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기는 계기가 됐다.
그는 최근 법원이 AI가 발성과 창법까지 복제해 만든 콘텐츠에 대해 원저작자인 가수의 권리를 인정한 판례와 할리우드 배우인 제니퍼 로페즈를 모델로 한 AI 광고 캠페인이 동의 절차를 거친 사례를 언급하면서 책임 있는 AI 활용에서 모범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AI를 활용하는 데 있어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센터장은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라면서 “개발자, 사용자, 정책 입안자 모두가 거버넌스의 주체로서 책임 있는 응답을 고민해야 하며, 윤리적 원칙과 실천적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사진기의 등장으로 화가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그러지 않은 것처럼 AI 역시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아르케 애니메이션의 대표인 강창훈 목사.


아르케 애니메이션의 대표인 강창훈 목사는 AI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을 나누며, 기술과 신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기독교 기반의 창작자가 겪는 고민을 나눴다. 그는 과거 짧은 기독교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3년간 8명이 함께 작업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개척교회 7년 차인 자신과 아내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8개월 만에 요나서를 담은 영화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상 제작 과정에서 욥과 베드로처럼 질문을 통해 훈련받는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문명에 가까운 존재이며,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성경 1189장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비전을 품고 있다.
또 교회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공동체가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하면서 “복음 영상 제작 말고도 성도의 사업 등을 돕는 일, 설교에 맞는 찬양을 찾고 설교 내용을 요약해 영상으로 제작하는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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