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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신문은 나의 생사여탈을 둘둘 말아 쥔다. 전 국민을 새벽에 깨워 공연한다고 고함쳐 주는 것이다. 정녕 나의 하늘이기에 애타게 매달렸다. 보도자료는 바로 그런 기도문이다. 기자들, 그들은 칼잡이들이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친 장황한 글을 단도직입으로 발겨내 뼈를 추렸다. 그 뼈에 근육질 문장을 붙여 읽게끔 만드는 시인들이었다. 나는 빨간펜 선생에게 배우듯 신문과 내 원고를 비교하며 붉은 밑줄을 그었다.

계약서를 쓰고, 큼지막한 동그라미를 그려 ‘공’, 그 안에 ‘옥진’을 넣고, ‘한의 춤’을 썼다. 1995년 12월3일 날짜 적고 도장을 꺼냈다. 인주가 없어 립스틱 묻은 입술에 비빈 후, 호호 불어 도장을 박았다. 훗날 나한섬정보
는 책 ‘노름마치’의 앞 페이지로 옮겨 비석처럼 세웠다. ㈜문학동네 제공

내일치 신문을 오늘 읽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전,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퇴근 무렵에 내일치 신문을 팔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찌라시’가 아닌, 믿을 만한 종합일간지였다. 그 시각, 지하철 안에서는 너나없이 내일치투자성향분석
스포츠신문을 펼치고 있었다. 요즘 말로 ‘내돈내산’, 제 돈 주고 사서 읽는 사람들. 옛말로 ‘곁불 쬐듯’, 옆과 뒤에서 넘겨다보는 사람들. 당시 지하철은 신문이 가득해 청춘남녀라도 눈이 맞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길 위에 있었다. 대학로와 종로에서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가 오후 5시쯤 광화문으로 왔다. 교보문고 지하 입구 앞에서 알라딘온라인릴게임
내일치 신문을 사서, 내 공연의 기사가 났는지 살폈다. 그리고 인쇄 잉크에 검어진 손을 씻고, 교보문고의 책들을 들췄다. 내 손에 덜 지워진 잉크가 시집에 묻을까 조심해야 했다.
기생, 무당, 광대, 한량, 초야에 묻힌 명인을 찾아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춤을 추면 누운 소가 돌아봤고, 소리를 하면 “헛간의 도리깨도 일어나 춤을 춘” 전설릴게임황금포카성
들이었다. 삼고초려로 설득하였고, 마침내 무대에 서면 일거수일투족에 박수가 터졌다.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인지라, 또다시 초야를 돌며 명인들을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수월치 않았다. “도둑질도 멈추면 찾지 않는데, 기생한 게 무슨 죄냐”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미끌미끌 떨어지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서너달, 피 말리는 담뽀빠이 릴게임
판으로 섭외하면, 공연 한달 전이었다. 그 한달 뒤의 공연을 나와 출연자와 극장의 대관 담당자 세 사람밖에 몰랐다. 그러니 섭외를 완료한 당일부터 개미지옥에 빠졌다.
‘멘붕’이란 말이 아직 없을 때였다. 설사 있었더라도, ‘멘탈 붕괴’로는 내 처지를 다 감당치 못했다. 나는 ‘맨붕’(맨땅에 붕어를 던져 놓은) 상황이었다. 화들짝 놀라 펄쩍펄쩍 뛰다 비늘을 떨구며 기진해 가는 붕어, 그것이 내 처지였다.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인을 찾았는데, 알려지지 않았기에 문예진흥기금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표를 팔아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데, 기간이 한달도 안 남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빠져나가는 아픔, 그것은 출혈보다 더한 통증이었다.
이때 신문은 나의 생사여탈을 둘둘 말아 쥔다. 전 국민을 새벽에 깨워 공연한다고 고함쳐 주는 것이다. 정녕 나의 하늘이기에 애타게 매달렸다. 보도자료는 바로 그런 기도문이다. 그러나 기도는 기도고, 글은 글이다. 기도야 하면 되지만, 글이 그리 쉽게 나오겠는가. 그래서 첫 줄을 쓰기 전에 먼저 의식을 치렀다. 기자들 명단이 인쇄된 용지에 붉은 사인펜으로 점을 누르고 있으면 서서히 붉게 번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붉은 점을 보며 “표 아니면 피를 판다” 스스로 나를 협박하는 주문을 외우며 글을 썼다.

보도자료의 첫 줄을 쓰기 전, 기자들 명단에 찍힌 이 인쇄된 용지에 붉은 사인펜으로 점을 찍었다. 그 붉은 점을 보며 “표 아니면 피를 판다” 스스로 나를 협박하는 주문을 외우며 글을 썼다. 명단 속 기자들은 내 이름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문장을 잊지 않고 있다. 필자 제공

기자들, 그들은 칼잡이들이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친 장황한 글을 단도직입으로 발겨내 뼈를 추렸다. 그 뼈에 근육질 문장을 붙여 읽게끔 만드는 시인들이었다. 또 출연자와 직접 통화한 후, 나도 모르는 그분들의 과거를 캐내기도 했다. 기억의 급소를 찌른 그들의 질문, 순간 빤히 알던 출연자가 낯설어졌다. 나는 빨간펜 선생에게 배우듯 신문과 내 원고를 비교하며 붉은 밑줄을 그었다.
시란 조사 하나라도 떨궈야 계체량을 통과해 시집 속에 실린다. 기사 역시 줄여야만 비로소 오늘치 신문에 실린다. 신문은 유통기한이 단 하루인, 펼쳐진 시집이었다. 전통이 오늘날에 살아남으려면, 이 오늘치 신문에 들어가야 했다. 그 좁은 문에 들고파 입시요강처럼 활자를 정독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었다. 점차 이 ‘줄이는 것’을 ‘줄임’으로 줄여, 무대 위의 춤과 소리를 분별하기도 했다.

소리와 춤과 극으로 이룬 창무극을 고안했다. 전통 판소리를 줄이고 늘이는 극작법으로 ‘공옥진’ 세 글자가 장르가 되었다. 최고는 역시 ‘심청전’, 첫 판에 살풀이춤을 올리니 벌써 멋이 뚝뚝 떨어진다. 공옥진, 공연을 완벽히 장악한 가무악의 명인이요, 전무후무한 흥행물이었다. ㈜문학동네 제공

공옥진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줄여야 놀지, 퍼지면 지향 없어.” ‘창무극 심청전’, 서두에 수건을 들고 살풀이춤을 추고, 그 수건으로 눈을 가린다. 심청이 술래잡기 놀이의 술래가 된 것이다. 아이들을 잡으려다 넘어져 “나는 잠시 눈 가려도 답답한데, 일평생 앞 못 보는 아버님”하며 운다. 이때 인당수 제물을 찾는 뱃사람이 오고, 심청이 300석에 몸을 판다. 살풀이춤으로 심청이 태어나고, 곽씨 부인이 죽고, 젖동냥하는 장면 등을 다 줄였으니 기막힌 극작법이다.
줄임으로 확보한 충분한 러닝타임, 그저 울리고 웃겼다. 그리고 “너무 웃지 마, 오줌 나와”, 얼토당토않은 말을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어차피 슬픈 내용, 웃기면 더 슬퍼졌다. 더 달게 하려고 살짝 소금을 치는 것처럼, 폭소를 가미해 한의 상승효과를 노렸다. 마침내 심봉사가 눈을 뜨고, 덕분에 모든 시각장애인이 눈을 뜬다. 이때 관객에게 묻는다. “그럼 황봉사도 눈을 뜰까요?” 황봉사는 심봉사와 함께 황성을 가다가 뺑덕어미와 도망간 자다. 관객은 눈을 못 뜬다는 ‘괘씸’파와 뜬다는 ‘허허’파로 나뉜다. 공옥진이 황봉사가 되어 눈을 끔적인다. “뜨뜨…뜬다!”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휙 내리며, “아이고, 한쪽밖에 안 떠버렸네!” 한쪽 눈만 떠, 양쪽을 다 만족시키며 폭소를 터트렸다.
1995년이니 30년 전이다. 이 멋이 뚝뚝 떨어지는 명인과 계약서를 썼다. 맞춤법이 맞지 않았지만, 또박또박 눌러 썼다. 그리고 낙관을 그렸다. 큼지막한 동그라미를 그려 ‘공’, 그 안에 ‘옥진’을 넣고, ‘한의 춤’을 썼다. 1995년 12월3일 날짜 적고 도장을 꺼냈다. 인주가 없어 립스틱 묻은 입술에 비빈 후, 호호 불어 도장을 박았다. 내 언 손을 덥히듯 호호 불 때, 불쑥 그 어떤 것이 내게 넘어왔다. 훗날 나는 책 ‘노름마치’를 썼고, 이 계약서를 앞 페이지에 비석처럼 세웠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아마 나도 그 나이 그때 무언가 다가온 게 아닐까. 광화문 지하도에서 덜 마른 잉크의 내일치 신문과 바싹 마른 시집의 뽀송뽀송함이 동시에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시인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덕분에 기자들의 줄임표를 읽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광화문의 내일치 신문이 사실상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 누구 집이 무슨 신문 보는지 다 알게 되었다. 문화면에 공연 기사가 뜨는 날 새벽, 골목골목 신문을 찾아 헤맸다. 남의 집 앞에 쭈그려 앉아 신문을 펼칠 때, 문화면이 나올 때까지 한장 한장 넘길 때, 으슬으슬 몸을 떨어야 했다. 마침내 내 공연 기사와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으면, 벌떡 일어나 신문사 늘어선 광화문 쪽을 향해 기자의 이름을 애절히 외쳤다. 그리고 펼쳐진 신문 앞에 한 몸 내던지며 “고맙습니다!” 오체투지로 엎드렸다. 언젠가, 한번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청소부들끼리 그랬다. “오늘 사법고시 발표 난 모양이네.”
이제 지하철에 오늘치 신문도 없다. 승객들은 휴대전화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틈만 나면 신문을 펼친다. 한눈에 다 들어와서 좋고, 기사를 읽다가 다른 기사를 발견해서 좋다. 골다공증처럼 칼슘 빠진 문장이 아니라, 죽염처럼 잘 구워서 줄인 문장이 좋다. 신문을 펼치는 것은 힐링이자 수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이 거미줄을 칠 때는, 신문은 ‘현대인의 필수 호신술’이다.
오는 7일이 ‘신문의 날’이다.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의 창간일로, 1957년부터 양력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했다. 언론인도 아닌 내가 이날을 기억하는 것은, 내게는 ‘스승의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 공연을 다뤄준 기자들, ‘어렴풋한 첫 줄’을 붉게 수정해준 일타강사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문장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의 그 기사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으니, 또다시 “고맙소!” 아울러 지금까지 신문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진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