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지하 다목적실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수험표를 나눠준 다음 당부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60대부터 70대까지 늦깎이 여고생들이 학교 지하 다목적실로 들어섰다. 담임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자 손을 든 학생들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험표를 건네받았다. 수험표에 적힌 이름을 빤히 들여다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걱정이 교차했다.
뉴시스는 수능을
하루 앞둔 12일 학력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를 찾았다. 이곳은 과거 성별을 이유로 또는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제때 마치지 못한 만학도들이 모인 곳으로, 올해는 학생 60명이 수능을 치른다. 최연소는 26세, 최고령은 78세다.
이날 찾은 학교 앞은 정문에서부터 선배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엄마도 대학 간다' '
여보 사랑한다 응원한다' 등 각종 플래카드가 보였고, "떡하니 붙으세요. 일성여고 화이팅.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화이팅" 힘찬 구호도 들렸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지하 다목적실에서 김형빈 3학년 4반 담임이 최고
령 수험생인 서혜숙(78)씨에게 수험표를 건네며 서로 인사하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수험생들 앞 책상에는 수험생 유의사항이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화이팅'을 외치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지만 마냥 편한 웃음은 아닌듯 해 보였다. 수험표가 나눠질수록 학생
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를 느낀 선생님들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3학년 4반 담임을 맡은 김형빈씨는 수험표를 받는 학생이 고개를 숙이자 더 깊이 숙이며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씨의 제자 38명 중 8명이 2026학년도 수능에 도전한다. 김씨는 "마음 편하게 늘 하던 대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잘 보고 오길 바란다"며 응
원을 보냈다.
다른 선생님도 "학부모로 오해받을까, 내일 교문 입장할 때 수험표 꼭 들고 들어가라"며 "당당하게 수험생이라고 말하라"고 말했다. 이내 학생들이 내는 높은 음의 웃음소리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입구 인근에서 후배들이 수능을 앞둔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김상현 교무부장은 "수능 시험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데다 만학도니까 굉장히 많이 떨리고 두려울 텐데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대로 편안하게 시험 잘 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기면 좋겠다"며 "원하는 대학에 꼭 붙길 응원한다"고 전했다.
어릴 때 중학교까지만 다녔다는 최고령 수험생 서혜숙(78)씨는 "그동안 틈틈이 닦아온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떨린다"며 "남편과 세 남매가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방송에 나오는 일성여고 학생을 보고 그 순간에 바로 입학하러 학교에 찾아왔다는 서씨는 "주변에서 꼭 대학교에 가서 그동안 못다 한 꿈을 펼치라고 하더라"라며 "학교에 다니니 자신감이 생기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손자와 함께 수능을 보게 된 김정희(72)씨는 "생각지도 않은 수능을 보니까 한편으로 너무 기쁘기도 하고 또 두려움도 있다"며 "대학 생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청소년 시절 몸이 안 좋아 '국민학교'만 졸업했지만 "늦은 나이에라도 공부하게 되니 몰랐던 걸 알게 돼 좋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의 가파른 경사로를 일성여고 만학도들이 걸어가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오후 1시12분께 수험표 배부가 종료됐다. 담임 인솔하에 학생들은 고사장이 있는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로 모두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 않게 발걸음을 뗐다.
학생들은 '우대권'으로 승차했을 뿐 십대 수험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수능 당일 지하철역 어느 출구로 나서야 하는지, 어디서 길을 건너야 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금세 홍익부속여고 앞에 도착했다.
정문에서부터 고사장으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높은 경사에 얼굴에는 땀이 맺힌 학생들은 숨을 고르며 계단 옆 손잡이를 꼭 붙잡았다.
그렇게 도착한 운동장 앞에서야 고사장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각자의 고사장을 확인하기 위해 둘러모여 서로의 수험 번호를 확인했다. 수험번호 끝자리가 비슷해 같은 고사장에 배치된 학생들은 "나랑 같은 곳이네"라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장을 확인한 학생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고사장 확인을 마친 후 들떠있는 학생들을 향해 담임 선생님은 "내일 늦지 말고, 늦으면 연락하라" "교문 앞에 있을테니 출석을 확인하고 들어가라"고 재차 당부했다.
며느리가 떡을 해줘서 눈물을 흘렸다는 조성옥(76)씨는 "부담 없이 재미있게 보러 간다"며 "늦게라도 대학은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회화를 전공해 눈이 쌓인 자작나무 숲을 언젠가 그리고 싶다고 했다.
백윤순(69)씨는 "모의고사를 풀어보니 '문제를 찍는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며 "이렇게 애들이 힘들게 공부했겠다는 걸 느끼며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려고 했구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교문을 나서며 누군가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집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다음 주에 있을 학교 기말고사를 대비해 교실로 돌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내일 잘 보셔"라며 마음을 건넸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한 후배가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2025.11.12. nowo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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