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SF시집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시집’을 기획한 허블의 안태운(오른쪽) 편집자와 시집 해설을 맡은 인아영 평론가가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의 한 북카페에서 책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과학소설(SF)이 촘촘하게 구축한 과학적 세계를, 시는 한 번도 쓰여본 적 없는 단어로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순간을 보게 될 때가 있어요.”
국내 최초 ‘SF 시집’이라고 이름 붙은 책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 시
바다이야기게임2 집’. 표지에 금빛 장식이 새겨진 시집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낯선 시어에 올라타 미지의 시공간으로 날아가게 된다. “내가 오늘 들고 있을 부케는 우주대폭발”(서윤후 ‘드론과 결혼하기’) 등의 시어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부유하며 현실 너머로 향한다.
‘SF와 시의 만남’이라는 낯선 시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시집을 기획한 허블의 안
바다이야기2 태운 편집자와 시집 해설을 맡은 인아영 평론가와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허블은 동아시아에서 2017년 론칭한 문학브랜드로, 그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등 SF를 출간해오다가 SF시집에까지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
◇ ‘직관의 언어’ 시가 열어내는 또
릴게임신천지 다른 세계… “논리·설명 없이도 언어 자체가 SF로 가는 매개”
시집 속 시들은 인간 외부로 시선을 돌려 SF적인 요소라고 할 만한 것들을 다룬다. 로봇, 인공지능, 외계 행성, 괴물, 아포칼립스, 기후, 생태 등이다.
“외계인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 여기선 누구도 자신들이 식민지인인 줄 모릅니다. / 전부 길러서 추수
릴짱 해가는데도 모릅니다”(김혜순 ‘육식 행성 보고’)
다만 안 편집자는 “처음 시인들에게 SF시를 의뢰했을 때 ‘SF시의 소재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다”면서 “종과 역사, 지구와 행성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현실의 토대를 살펴봐 주길 기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안 편집자와 인 평론가는 특히 시의 장르적 특성
10원야마토게임 이 SF적 세계와 맞닿는 지점에도 주목했다. “한 문장, 한 단어만으로도 여러 시간과 공간을 여는 시의 특성이 SF와 잘 조응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SF와의 차이도 두드러진다.
“SF에서는 과학적인 세계관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구축돼있는가, 텍스트 안에 있는 설명만으로 독자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면 시는 달라요. 시에서는 언어 그 자체가 여러 시공간으로 가는 하나의 매개가 돼요. 때로 시어들 간의 연결이 성글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 또한 SF적인 거죠. 빈틈 사이에 내가 통제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세계가 있거든요.”(인 평론가)
“시는 세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직관의 언어’에 가까워요. 전후 맥락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어는 발화되는 순간부터 어떤 SF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안 편집자)
◇ 기존 앤솔러지와 다른 구성도 눈길… ‘화려한 라인업’ 자랑하고도 시인 이름은 없다?
시집이 독특한 또 하나의 지점은 구성이다. 시인의 이름 없이 시만 수록한 데다가, 한 시인이 쓴 시 세 편이 나란히 배치돼 있지도 않아서다. 김혜순, 신해욱, 이제니, 김승일, 김현, 서윤후, 조시현, 최재원, 임유영, 고선경, 유선혜, 한영원 시인 등 독자층이 굳건한 시인들이 참여했음에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시가 누구의 시인지 알 수 없게끔’ 시를 배치했다. 김혜순 시인은 최근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이후 처음 선보이는 신작 3편을 이번 시집에서 발표했는데, 독자들은 어떤 시가 그의 작품일지 예상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집 속 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앞뒤 작품과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알맞게 조율된 흐름 속에서 독자들이 SF시를 감각하게끔 만들고 싶었어요.”(안 편집자)
“시인의 이름 없이 시를 읽다 보니 즐거운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이 시인은 이런 시를 썼겠지 하는 제 기대감을 즐겁게 배반하는 시들도 있었고요.”(인 평론가)
심지어 명단이 공개된 시인들의 작품 외 시들도 더 숨겨져 있다. 제3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이기도 한 안 편집자의 시와 허블의 김학제 편집자가 쓴 시다. 12명 시인의 시 각 3편씩, 총 36편의 시 외에도 2편의 시가 더 실린 셈.
안 편집자와 인 평론가는 SF시집을 읽은 독자들이 경험하게 될 즐거움을 자신하고 있었다. “한국 문학 독자들이 SF시집이라는 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아요. 시집을 읽고 나서, ‘한국 문학에 그동안 이런 기획이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인 평론가)
인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