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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초레뜨네! 초꼬레뜨!” “?릿(chocolate)!” 미국에서 물 건너온 초콜릿바를 서울 사는 막내딸 봉아가 경북 안동에 사는 엄마와 고모에게 선물하자 각기 다른 ‘발음’을 선보인다. 풍문으로만 전해 들었던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문 시골 양반 여성들은 급격히 동공이 커지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격한다. 서울에서 가져온 두 번째 신문물인 커피. 커피를 예찬하는 봉아와 달리 시골 아낙들의 입맛에 커피는 쓰디쓴 사약에 가깝다. 성악가들의 우아한 아리 남북 아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울려 퍼지는 것도 신선한데, 한바탕 소동극에 가까운 3막은 폭소가 터질 정도로 유쾌하다.
국립오페라단의 창작극 ‘화전가’가 지난 25, 26일 주말 양일간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반투명한 막이 채 걷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봉아(성악가 윤상아)만이 막을 뚫고 앞으로 나와 있고, 나 사금융대환이자 머지 인물들은 막 뒤에서 흐릿하게 존재했다. 정영두 연출의 의도는 이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봉아가 전하는 옛 기억의 한 페이지이며, 막 뒤의 인물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린다. 덕분에 유쾌한 대사와 익살스러운 동작에도 마음 한편에 쓸쓸한 감상을 지니고 이어지는 3시간의 무대를 지켜보게 된다.
때는 일제강점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대전 새마을금고 6·25전쟁의 조짐이 조금씩 짙어져 가던 1950년 4월. 경북 안동의 한 반촌에는 남자 식구 하나 남지 않은 집안이 있다. 안주인 김(이아경) 씨도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잃었고, 고모(김선정)는 시집간 지 이틀 만에 과부가 되었으며 김 씨의 아들들은 요절하거나 좌익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해 두 며느리들만 함께 기거하는 중이다. 시집간 딸들 셋과 행랑어멈 부가가치세법제25조 독골할매(임은경)와 독골의 수양딸 홍다리(양제경)까지 총 9명의 여인이 김 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한 집에 모인다.
하필 이날은 경신일(庚申日)로 잠들면 주변 사람들이 화를 입을 수 있어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다. 다음날 화전놀이(밀가루 반죽으로 꽃잎 전을 만들며 즐기는 여자들의 봄놀이)를 가기로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여자들은 밤새도록 국가주택기금 수다를 떤다. 유쾌하다가도 비명에 간 큰아들 기준을 그리워하고, 난리 통에 정인을 따라나서지 못했던 한을 풀어놓는다. 배삼식 극작가는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한국 여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도 뻔한 신파로 흐르지 않도록 완급조절을 했다.
유명 한복 디자이너인 김영진 의상감독이 디자인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입은 옷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옷이 곧 서사랄까, 여인들이 사연을 소개할 때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풍족하지 않은 살림일지라도 양반 여인들이 발목까지 덮는 정식 한복을 입었다면 하인인 독골할매와 홍다리는 일을 하기 편하도록 긴 치마를 걷어 올려 끈으로 동여맸다. 남편을 잃어 상중인 큰며느리 장림댁(최혜경)은 소복 차림이다. 화전놀이를 떠나는 3막 마지막에는 ‘선녀옷’처럼 색색의 고운 한복이 하늘에서 횃대에 걸려 내려와 여인들 앞에 놓인다. 흩날리는 컨페티(꽃가루)와 함께 연출된 극적인 장면은 함께 꽃놀이를 따라나서고 싶게 만들 정도로 관객의 마음을 간질였다.
‘화전가’를 비롯해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작품은 통상 주말 이틀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투입된 노력과 공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오페라단 관계자는 “창작극은 관객 수요가 적은 편이라 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행히 반응이 좋아 추후 지역 공연을 계획해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민경 기자
